어제 '바다'에 다녀왔다.
낮잠을 자고나니 어두운 저녁이 다 되었었는데, 갑자기 "가야되겠다"싶었다.
그래서 부랴부랴 막차 시간만 확인하고, 엄마 아빠에게 나 좀 다녀와야겠다고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.
얄팍한 지갑때문에 좀 아슬아슬했는데, 엄마와 아빠는 구박을 하면서도 당장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탈탈 털어 보태줘서, 고맙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.
아슬아슬하게 이십분 정도를 남겨두고 청량리 역에 도착할 수 있었고, 눈 딱 감고 삼천원을 더 내고 특실을 끊었다.
티켓의 목적지는 정동진.
새벽기차는 칙칙폭폭, 바다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고,
여행의 시작에서 난 설렜다가 두렵기도 했다,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.
pm 10 : 40, 기차를 타고, 도착을 하니 새벽 다섯시가 아직 안되어 있었다.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.
라면을 먹고, 대합실에서 몸을 좀 녹이다가, 여섯시 이십분이 넘어서 벤치로 나가 해가 뜨는 걸 봤다.
정확한 일출은 아니었고, 어느 순간 밝아져서 해가 떴구나 했다.
날씨는 흐렸고, 추웠지만, 그래도 파도소리는 참 좋았다.
아, 오길 잘 했구나.
백사장에 쪼그리고 앉아, 한참 바다를 충전했다.
금세 또 보고싶어질테니까,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충전, 또 충전.
노래 트랙이 넘어가는 사이, 들려오는 파도소리와, 또 다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어 흥얼흥얼.
비틀즈는 역시 좋아, 좋아.
바다를 한참 충전하고, 바지에 실컷 모래가 묻은 뒤,
하슬라아트월드에 가서 한참을 놀았다. 이른 시간에 빗줄기가 툭툭 하고 떨어져서, 관람객은 나 혼자.
여기저기 재미있는 조각들과 작품들도 구경하고. 빗소리도 듣고.
좋은 곳은 많았지만, 가장 좋았던 곳은 시간의 광장. 빈 의자에 앉아, 멍하니 바다도 보고. 어두운 터널을 지나, 빛으로 나오는 순간, 꽤 센치해지기도 했고. 발걸음은 씩씩하게.
여행에 책을 두권 가지고 갔는데, 새로 산 책과 몰댄이었다.
몰댄을 다시 여행중에 읽어보니 새로운 기분도 새록새록 솟고.
그리고 카페. 카페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, 토스트도 먹고.
한 두시간정도 혼자 앉아서 이것저것 끄적거리기도하고, 음악도 듣고, 책도 읽었다.
빗소리는 굵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하고, 단체로 소풍을 온 건지 유치원생들이 우르르 몰려 가는 걸 구경하기도 하고, 안개 덕분에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모를 풍경에 넋을 놓기도 했다.
마음이 한결, 시원해졌다. 이걸로 내 여름과 가을에 걸친 방황은 잠시 접어둬야지.









